朝日新聞2009年8月15日 天声人語 韓国語翻訳 <移行分> | (新)韓国語への挑戦

(新)韓国語への挑戦

ロングコートチワワのルー[2019.04.14生]との日常。
小田和正,SHINee、東方神起のファンです。

<移行分です。Yahooブログに2008年8月31日に投稿したものです。>

 

https://blog.with2.net/link/?2007328

https://blog.with2.net/in.php?1593940

 

以前の記事下矢印

https://09200715.blog.fc2.com/

https://blogs.ya7日hoo.co.jp/8r09200829

 

【RIEの一言】
8월이면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날 그리고 종전 기념일에 맞추어서 여러 가지 방송이 있고 신문에도 관련 기사가 실립니다그 중 8월15일의 아사히 신문 ‘천성 인어’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종전 기념일’인 이 날이 한국에서는’광복절’이라는 사실을 한국어를 공부하기 전에는 한국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8月になると日本では広島と長崎の原爆の日そして終戦記念日に合わせて,色々な放送があり新聞にも関連記事が掲載されます。
その中8月15日の朝日新聞の『天声人語』を読んで衝撃を受けました。
日本で『従来記念日』なのに韓国では『光復節』と言うことは韓国語を勉強する前には韓国には関心がなかったので知らなかったことです。
本当に恥ずかしく申し訳ないです。

야스쿠니 문제 등 일제가 저지른 짓과 관련돼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이 ‘일본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는 기사등을 볼 때마다 슬픈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그 ‘천성 인어’를 봤을 때엔 그 전날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전쟁을 체험하신 일본 할아버지들 얘기가 생각나서 꼭 한국어로 옮기겨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靖国問題など日帝が犯したことと関連し韓国や中国の人が『日本を許せない』という記事などを見る時たびに悲しいです。
しかしその『天声人語』を読みその前日に見たTVで戦争を体験された日本ご老人の話を思い出し韓国語に訳したいと思いました。

그 방송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그래,나,,사람을 죽였어.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죽음을 당했을 거고 나의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이라는 비인도적 일이 없었더라면 일본도 이렇게 다른 나라로부터 아직까지 ‘싫다!! ‘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TVであるおじいさんが
「、、、人を殺したよ。そうしなければ自分が殺されるし、家族のために仕方なかった。」
と涙を流しながら言っておられました。
戦争と言う非人道的ことがなければ
日本も他国から未だに『嫌いだ!!』といわれ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

그러나 일본 국기가 태워지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한 일본인으로서 슬픈 마음이 듭니다.
일본은 앞으로도 용서해 주지 않겠습니까?
でも日本の旗が燃やされたりするシーンを見るたびに日本人として悲しいです。
日本はこれからも許してもらえないのでしょうか?
 
 

2009年8月15日(土)
人はだれも名前を持ち、どの死者にもその名で営まれた人生がある。
おびただしい犠牲を出したシベリア抑留から生還した詩人の石原吉郎は、「死においてただ員数であるとき、それは絶望そのものだ」と書き残した。
「人は死において、ひとりひとりその名を呼ばれなくてはならない」と述べ、大量殺戮を「数の恐怖」としてのみとらえることは許されない、と記した。
酷寒と重労働のソ連の強制収容所で、名もない無残な死を見た者の、怒りと鎮魂の筆だったに違いない
同じ思いを、新潟県に住む元抑留者の村山常雄さん(83 )は行動に移した。
死亡した日本人のうち4万6300人分の名前を、11年かけて調べ、まとめた。
すべてを載せて一昨年に自費出版した『シベリアに逝きし人々を刻す』は重さが2キロにおよぶ。

まさに「紙の碑」である
様々な資料を突き合わせて、ロシア側資料の奇妙な名も丹念に特定していった。
たとえば「コチ・カショニチ」は「幸地亀吉」と分かった。
名前とともに生年や死亡日、埋葬地も明らかになっていった
どれだけ意味のあることか、と思ったりもしたという。
だが、やめられなかった。
「無名にされることは存在の否定です。その恥辱で人間をおとしめたのが戦争であり、抑留でした」と村山さんは振り返る。
8月15日がまためぐってきた。
幾多の命が「員数」として果てた戦争の罪深さをあらためて思う。
遠ざかる過去だが、今日ぐらいは引き戻したい。
生者にせよ死者にせよ、昭和を終わらせられない人が、まだ少なくはない。
 
 
RIEが翻訳し신정훈さんという韓国ネイティブにチェックして頂いたものです。
 
 
2009년8월15일(토)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고,죽은 사람에게조차도 그 이름으로 영위한 인생이 있다.
숱한 희생을 낸 시베리아 억류로부터 생환한 시인인 이시하라 요시로는”죽음이 단지 숫자로밖에 다루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바로 절망이다.”라고 써 남겼다.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한 명 한 명 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라고 하며 대량살육을 ‘사망자수로 인한 공포’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매서운 추위와 소련 강제 수용소에서 겪던 중노동으로 이름도 없는 끔찍한 죽음을 본 사람의, 분노와 진혼의 글이었던 것이 틀림 없다.
같은 생각을 니가타현에 사는 전 억류자인 무라야마 쓰네오 씨 (83 )은 행동으로 옮겼다.
돌아가신 일본 사람들 중 4만6300인분량의 이름을 11년을 걸고 알아보고 묶었다.
모두를 실어서 재작년에 자비로 출판한 책 ‘시베리아에서 돌아가신 사람들을 새긴다’는 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된다.

바로 ‘종이로 된 비석’이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비추어 러시아 쪽의 자료들 중 기묘한 이름들도 꼼꼼히 알아냈다.
예컨대 ‘고치•카쇼니치’는 ‘고치 카메키치’이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름과 함께 태어난 날이나 죽은 날 그리고 매장된 곳들도 밝혀졌다.
그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고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못했다.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존재의 부정입니다. 그 치욕으로 인간을 깔본 게 전쟁이자 억류이었습니다 “라고 무라야마 씨는 되돌아본다.

8월15일이 또 돌아왔다.
수 많은 목숨이 ‘사망자수’로 끝난 전쟁의 죄의 깊이를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멀어지는 과거이지만 오늘만큼은 되돌리고 싶다.
생자이건 사망자이건 간에 쇼와를 마무리할 수 없는 사람이 아직 적지 않다.